이방인

일상 2014. 12. 27. 06:31

딱 그런 날이다. 모든 게, "태양때문이었다" 라는 말이 이해가 될 듯한 그런 날 말이다.

아내는 두 아들과 Hero 6 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러 갔고, 막뚱이는 내 옆에서 토마스와 친구들을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집중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난 에어켠을 켜고 소설의 마지막 문단을 다시 한번 단어 하나 하나 음미해보고 있었다.


내게 남은 소원은 오직 하나, 모든 것이 완성되고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질 수 있도록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그날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 와 증오에 가득 찬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었다.

For all to be accomplished, for me to feel less lonely, all that remained to hope was that on the day of my execution there should be a huge crowd of spectators and that they should greet me with howls of execration.


크리스마스 연휴 전이었다. 

올해의 공식적인 업무를 다들 비공시적(?)으로 마무리 하고 끼리 끼리 잡담을 나누면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The Stranger"

연휴 때 어떤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대답했다.

소설 이야기가 나오는 와중이어서, Stranger? 라고 되물었다. 알고 보니,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이었다.

영어 제목이 이렇게 낯설구나.

책을 그다지 읽지 않는다는 스티브가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책이었다.


스티브와 같이 일한지가 1년 조금 넘었다.그 사이 알게 모르게 맺혀진 이 친구의 이미지와 참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일전에 한번 이 친구에게 어쩔 땐 니 태도가 참 gray   하다면서 그러다 양쪽에서 돌이 날아올지도 모르니 잘 살펴봐라고 웃으면서 말한 적이 있었다. 이런 표현이 영어권에서 사용되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뜻인지 곧바로 아는지, 빙그레 하며서 웃더라. 그리고 덧붙이길 "내가 이 프로젝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politically independent 하기 때문이야" 라면서,반쯤은 인위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마 지금 쯤, 호바트 어느 해변가에서 싱글 오리진 초콜릿, Sullivan's cove 위스키, 그리고 한개피에 60불 하는 시가 하나를 물고 있을 지 모르겠다.

떠나기 전 내 휴가 준비물 이라면서,즐거운 듯이 이맛은 어떻고 저건 저래서 좋다면서 즐거운듯이 설명을 하더라.

그리고 잊어서는 안된다는 듯이, "그런데 장모님은 이런 걸 아주 탐탁치 않게 생각해, 난 별로 개의치 않지만 말이야."

그 해변가에서 다시 만나는 이방인 이라면, 조금은 더 뫼르소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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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amy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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