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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일상 2009. 9. 7. 09:53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 가야 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

오, 아침이여,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는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명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리.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
길은 또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 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보리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



결혼 전 아내에게 책 선물을 받았다.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첫 장을 넘기면 곧 여행자를 위한 서시가 실려있다.그날 밤의 그 잔잔한 감동은 지금도 새롭다.

사실 그전에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라는 시집을 들은 적이 있었다.그리고 그 제목을 듣는 순간,얕은 말장난 같이 들렸었다.

하지만,그날 이 시구를 몇 번이고 되뇌어보면서 사실은 내가 얕았고,편협했구나 라는걸 새삼스레 알게되었다.

마음에 드는 시집을 사본 건 브레히트의 살아남의 자의 슬픔이 마지막이었다.그 사이 몇번이고 서점에 가서 기웃거려 보았지만, 선뜻 손이 가는 게 없었다.

이렇게 흐린 날은,여정을 풀고 이국 땅에서 아들들과 뒹굴어 보는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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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amy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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