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밤

일상 2014. 5. 10. 05:25

특히나, 주말 밤이면 더 그렇다.

아내와 아이들이 없는 집이 더 크게, 더 차갑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사이 브리즈번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짙은 초록색 케이스가 참 예쁘다. 글렌피딕 싱글 몰트 12년산.

케이스를 몇 번 돌려보고 난 후, 양주잔을 기울였다.

나도 모르게 한숨 같은 소리가 나온다.

'쓰네'

크리스탈 양주잔 밑에 뽀로로와 크롱이 웃고 있다.그 모습을 한동안 의미없이 응시하다, 다시 한번 기울인다.

'.. 확실히 쓰네'


이런 날은 쉽게 잠들지 못한다.창문 밖 달빛은 시리도록 환하다.


얼마나 지났을까,꺼져있는 티비 브라운관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발견한다.알 수 없는 적막함이 집안 가득하다.

'뭐하고 있나' 


짧은 한숨을 토해내고, TvPad를 켰다.

영화, 드라마 이것 저것 놀러봐도, 5분을 넘기는 게 없다.


그러다, 제목이 특이한 걸 발견했다. 그 많은 드라마 리스트 중에, 제목이 가장 짧기도 하고, 흔하게 쓰이는 단어가 아니라 한번 더 호기심이 생겼다.

'밀회???'

그리고, 깊은 새벽에 접어들 때 까지,이 드라마를 보고 있다.

참 잘 만들었다. 이런 예민한 주제를 이렇게 잘 풀어내다니, 작가도 연출도 대단한 솜씨다, 싶다.


사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주요 장면마다 흐르는 피아노 선율이었다.이 겨울 밤,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특히, 극중 선재가 받은 리히터( 극중에선 리흐테르로 나온다 )가 반가웠다.한국에서나 호주에서나 내가 지니고 다니는 유일한 피아노곡이 바로 리히터가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2번이다. 많은 클래식 연주가 카피되고 지워졌지만, 이 연주곡만은 늘 그 자리에 있다.



드물게 늦게 일어 난 일요일, 대충 준비한 아침을 먹다 아내와 전화통화를 한다.

지금 뭐하고 있냐는 물음에, '드라마 밀회 보고 있다' 하니, 참 의외이고 재밌다는 듯이 '그렇게 재밌냐'고 묻는다, 날아갈듯이 가벼운 웃음과 함께.

아내는 이 드라마를 들은 적은 있어도, 보지는 않았나 보다. 

한번 봐 보라고 했다, 사실 아내가 어떻게 느낄지도 무척 궁금하다.


그렇게 지난 주말 사이 12화를 전부 봤다, 아마 이 드라마에 대해서는 한번 더 포스팅할 기회가 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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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amy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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