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녁 들릴 듯 말 듯 한 빗소리에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아직 어둑한 여명의 희미한 불빛에 반사되는 풀장 위로 펼쳐지는 수많은 동심원을 바라보다, 문득 어머니의 손길에 이끌려 이른 아침에 길을 떠난 그 새벽녁의 정취가 떠오른다.
당신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비비고 깨어난 막둥이를 데리고, 그 새벽 잰걸음으로 완행열차에 올랐다. 그리고 도착한 아직도 이른 아침의 구례역.
40년이 지난 지금도, 난 잔잔하게 일렁이는 그 안개 가득한 기차 역사와 당신의 손을 꼭잡고 걸었던 그 길목 길목들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어린 나는 발목까지 올라오는 솜사탕 같은 안개와 한발자국 옮길 때마다 일렁이는 그 안개 물결들을 세상 처음 보는 것처럼 신기하게 바라봤었다. 금세 사라지는 안개를 두 손으로 담아도 보고, 휘적 휘적이기도 하는 나를, 당신은 말없이 가만히 날 바라봤었던 것 같다. 앙증맞은 막둥이의 따뜻한 손을 꼭 쥐여주셨던 당신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아침이면 둘째를 학교에서 내려주고, 막둥이 학교를 향하는 그 도로에서, 신호등에 걸리는 순간이면 늘 한 손을 뒤로 내민다. 그때마다 막둥이는 말없이 그 앙증맞고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아준다. 그 옛날 당신이 내 손을 잡아주었듯이.
Hans Zimmer - Time (OST "Inception") │ Fingerstyle guitar
https://youtu.be/uAcALH67-2A?si=HoHw1O61Buaolk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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