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의 가장 착한 벗은 거울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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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2.04 AAAGGGAGAGTTTCTA 나 GGGTATATTGGAA
- 2009.12.01 현명한 인생
그리고 나의 가장 착한 벗은 거울 속에 있다.
<방문진의 하수인으로 돌아온 엄기영을 더 이상 인정할 수 없다>점령군의 칼부림은 경영진을 반토막 내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것도 보도, 편성, 제작, 경영이라는, 정권과 방문진이 그토록 못 마땅해 하던 역할을 해온 이들을 무대에서 한꺼번에 퇴장시킴으로써 이제 그들이 원하는 꼭두각시들로 빈자리를 메울 수 있게 됐다. 방문진은 또 엄기영 사장을 비롯한 살아남은 경영진들에게 언제든지 칼을 휘두를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조금의 반항도 용납될 수 없음을 뼛속 깊이 각인시켰다. 이로써 방문진은 남은 자들과 새로 들어온 자들이 서로를 감시하고 충성을 경쟁토로 하는 체제를 확립했다며 뿌듯해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MB 정권엔 MBC를 전리품으로 바치며 점령군으로서 하달 받은 첫 번째 임무를 드디어 달성했음을 자랑스럽게 보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오만방자하고 몰상식한 칼날의 위협만으로 MBC를 제 손아귀에 넣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권과 방문진만의 착각이다. 방문진의 재신임은 엄기영 사장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식물 사장으로 전락시켰을 뿐이다. 자신의 팔다리를 잘리고도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는 굴욕을 선택한 엄 사장에겐 이제 방문진의 하수인이며, 정권의 나팔수를 자처한 인물이란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혔다. 대체 그런 낙인이 찍히고서 어떻게 방송의 독립을, 공정성을,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지켜낼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우리는 정권으로부터, 방문진으로부터 재신임을 받고 돌아온 엄기영 사장을 공영방송의 수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 자신의 생명 연장을 위해 팔다리를 잘라 내준 것은 한 조직의 책임자로서 배신이며 용서받기 어려운 행위임은 물론이고, 엄 사장의 더 크고, 씻을 수 없는 죄는 온 국민을 위해 지켜야할 공영방송의 수장 자리를 조금의 주저함이나 반항 한번 없이 방문진에 스스로 갖다 바친 행위이다.
조합은 오늘 이 시점부터 공정방송 실현을 위한 협의 외에 사측과 일체의 대화를 중단할 것을 선언한다. 또 방문진의 꼭두각시로 채워질 새로운 경영진 역시 절대 인정할 수 없다. 우리는 이들이 단 한 발자국도 MBC에 들이밀 수 없게 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 이미 공언한 대로 공영방송의 위상을 뿌리 채 흔들어 놓은 김우룡 이사장에 대한 퇴진 투쟁은 지속적으로 진행해 나갈 것이다.
국민을 섬겨야할 방문진은 정권을 섬기고, 시청자를 섬겨야할 엄 사장은 방문진을 섬기는 어처구니없는 형국이다. 이제 공영방송 MBC의 운명을 지키는 것은 2천여 MBC 조합원들의 사명이자 곧 우리의 운명을 지키는 일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과 희생이 닥치더라도 이 시대가 부여한 막중한 임무를 다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MBC 노조의 성명서를 읽고,나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사용되는 단어 단어 마다 날이 바짝 서있다.그 정도로 상황은 급박하다.
엄기영 사장의 진의를 어서 빨리 듣고 싶다.침묵은 필요할 때 꼭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때만이 그 가치를 발한다.
내 나라가 점점 더 잔인한 사회로 변질되어가고 있다,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안정망과 장치들이 하나둘씩 맥없이 쓰러져 간다.이젠 그 쓰러지는 소리마저 들을 수도 없게 되어버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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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용 노트북 옆에 있는 달력을 보다가, 복근 운동 표시가 눈에 띄였다.
처음 시작한 게 9월 25일.
총 67일중 29회,그 기간동안 아침 15회, 오후 14회
9월:6회 / 10월:15회 / 11월:1회 / 12월:7회
11월달은 단 하루만 했었다. 표시를 안한건 아닌가, 내 자신을 의심한다. 설마.. 정말.. 단 하루만 했단 말인가.주말에도 한 적이 있을 건대, 어쨋든 미 표시니 제외시켰다.
뭔가 자극을 주고 싶어서 내기를 한건대, 내기를 지는건 물론이거니와 복근에 별다른 변화를 없을 것 같다.
주 3~ 4회로 운동은 꾸준히 하지만, 복근과는 별 관계가 없다.그렇다면 실행 방식을 바꿔야 겠다.
프레임을 보고나서 내 자신에게 실험 하고 싶었던 건, 내가 주로 쓰는 방,피씨 앞에 거울을 하나 달아 두는것과, 내 흉부 X-Ray 사진을 걸어 놓자 였다. 이것도 아직 미 실행이다.
이런 자극과 장치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건 이대로는 배만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 육개월 이상 꾸준히 했던 걸 꼽으라면 뜸 이었다.무극 보양뜸의 백회와 폐유혈을 제외한 나머지 혈은 지금도 화상자국이 선명하다.아침 저녁으로 했었고, 이렇게 하는게 간단한 복근 운동 보다 더 어려웠을 것 같은데,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 즈음에 화상 자국을 보면서 동료 개발자들이 한 마디씩 건넸다.
"왜 나이도 있으신 분이 담뱃빵을 하세요?"
"독한 놈"
"그러다 좀 있으면 촛불, 수갑 되는 거 아니예요?"
어쨋든 20일 남았다, 아침 저녁으로 다시 한번 해본다. 아~ 그리고 나 한텐 위핏도 있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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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면서 "정치이야기는 딴 데 가서 하라, 난 정치에 관심이 없다" 라는 말을 듣게 되면 다시 한번 그이를 돌아본다.
그렇게 되어버린 원인이야 많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시선을 감출 수는 없다.
정치는 곧 우리 생활이다.
홍세화의 새 책 생각의 좌표 를 소개하는 기사 제목이 유난히 와 닿는다.
링크를 걸려다가, 글 전체를 옮겨본다.
20대에 반(反)나치 투쟁에 참여했다가 붙잡혀 수용소에서 죽을 운명이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유태인 학자 프리모 레비는 일흔 살을 앞두고 끝내 자살을 선택했다. 그는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괴물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위험한 존재가 되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의문을 품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인 인간들 말이다."
괴물보다 위험한 것은, 바로 '기계적' 인간들. 프레모 레비가 이들을 '위험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이들이 결코 '의문'을 품지 않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의 폭력이 가능했던 이유는 독재자의 폭압적인 통치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독재자의 폭력에 '침묵'했던 대다수의 독일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9년 대한민국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용산에서 철거민 다섯이 목숨을 잃었을 때 사람들은 처음엔 분노를, 그 다음엔 동정을, 그 다음엔 망각을 선택했다. 영국의 사회학자 스탠리 코언의 책 제목을 잠깐 빌리자면, '잔인한 국가'와 '외면하는 대중'이 기가 막히게 호흡을 맞추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겨레>기획위원 홍세화가 6년 만에 새 책을 펴냈다. 그의 책 <생각의 좌표>(한겨레출판 펴냄)는 '외면하는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 틀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하는 책이다. 당신의 생각은, 어떻게 당신 것이 되었는가, 라는.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
홍세화에 따르면, 사람은 때로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다. 사람들의 생각은 여간해서는 잘 바뀌지 않으며, 웬만한 내적 결단과 용기 없이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다.그런데 그 생각들이 개인의 부단한 성찰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제도 교육과 사회가 던져준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내 생각의 '주인'이 아니라, 남들이 뿌려놓은 생각의 '노예'가 된다. 따라서 저자는 끊임없이 독자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
▲ <생각의 좌표>(홍세화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출판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
홍세화는 이 질문을 적극적으로 던질 때 자기 생각을 바꿀 가능성은 그나마 열리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지배 세력이 주입하는 생각들을 그대로 수용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한편으로, 이 질문에는 이미 '생각의 노예' 상태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쓸쓸한 시선 또한 담겨 있다.
'당신의 (지불) 능력을 보여주세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는 선동에 사람들은 동화할 뿐 아니라 선망하고, 학생들은 줄 세우기식 교육을 통해 이따금 인권 의식을 '배우(學)'지만, 일상에서는 오히려 인권 침해를 '익힌다(習)'. 물신 지배의 논리에 우리가 무방비로 포섭돼 있는 '생각의 노예'임을 너무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왜 비판하지 않고 선망하게 되었나?
문제는 이 과정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자신이 해고를 당하기 전까지 비정규직 노동자의 싸움은 '노력하지 않은 자'들의 밥그릇 싸움이다. 갑작스런 재개발로 턱도 없는 보상비를 받고 쫓겨나기 전까지는, 용산 참사 희생자들에게 '몇 푼 더 받으려 싸우다가 죽은 사람들' 정도의 시선을 던질 뿐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 모든 문제들이 '나의 문제'가 될 수 있음에도, 자신의 존재를 거슬러 의식을 형성하는 사람들.
이러한 의식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현실 가능성과 무관한 주술에 의식을 맡겨 놓고, 현재의 자신의 처지가 아니라 꿈꾸는 미래의 모습에 자신을 투사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대한민국 1퍼센트'나 '부자 아빠'라는 미래에 대한 선망이 자신의 존재를 압도한다.
'더 인간적인 사회'가 아니라, '덜 비인간적인 사회'로
"내가 유전자를 신뢰하는 데 비해, 그는 교육과 환경을 신뢰한다. 내가 자신과 남을 싸잡아 불신하는 데 비해, 그는 남과 자신을 동시에 신뢰한다. 우애, 연대 같은 말이 내게는 관념인 데 비해, 그에게는 구체다."
'파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를 가장 먼저 국내에 소개한 고종석이 자신의 책 속에서 그를 평가한 대목이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났지만, 망명객의 신분을 벗고 한국에 돌아온 홍세화는 크게 달리진 점이 없다. 여전히 교육과 환경을 중요성을 신뢰하며, 책상머리에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사회적 약자의 연대'를 주장한다.
의식이 존재를 배반하는 사회. 그래서 모두가 상위 1퍼센트로 달려가는 사회. 그럼에도 저자는 '사회적 약자가 연대하는' 사회를 끈질기게 희망한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고 그 근거인 젊은이에게 다가가려는 시도"로 책을 썼다는 그는 젊은이들에게 뿌리깊은 물신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인간성의 항체'를 기르자고 당부한다.
" 이상 사회를 미리 그려놓고 그것을 향해 사회 운동을 펼쳐 나가기보다는 오늘 이 사회의 불평등과 고통과 불행을 덜어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지금 여기'를 끊임없이 개선해 나가면서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오늘 한국에서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르는 열성을 보이는 집단은 두 부류이다. 하나는 함께 교회에 가자는 사람들이며 다른 하나는 '조중동'을 구독하라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명절 때 만나는 친척에게 한나라당에 힘을 실어주지 말라고 설득하지 않으며, 식당 주인에게 '이 집 음식 맛은 괜찮은데 몰상식한 신문을 보시네요'라고 한마디 던지지 않는다. (…) 건강한 시민이라면 의지로 서로의 힘을 결집시켜야 하며 힘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마땅하다. 이것을 우리는 '연대'라고 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더 인간적인 사회가 아니라, 덜 비인간적인 사회"를 위해 쉼 없이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군가의 생각이 바뀌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너무 잘 알고 있는 그가,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나'라는 성찰을 주문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렇게 한걸음 씩 나아갈 때만이, 이 사회가 조금은 '덜 비인간적'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선명수 기자필자의 다른 기사
같은 신음소리나 이 가는 소리 정도 밖에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재밌다,무척이나 흥미롭고 곁에서 같이 걸어가는 것 처럼 매끄럽게 이야기를 이어간다.학자가 글도 이렇게나 잘 쓰는구나.
그런탓인지 각 장들의 제목들도 마음에 든다. 덧붙여 책의 무게도 내 입맛에 딱 맞다.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오른손 바닥 위로 가볍게 던져봤다.
이 무게감을 안다.친숙한 무게감이다.
2년 전쯤인가. 무슨 생각에서 인지 저글링을 배우고 싶었다.인기 짱 되는 저글링 배우기 라는 책으로 한 달여 만에 저글링을 완성했다.조그만 성취감이었다.
이 분의 또 다른 책 모자란 남자들 : 과학 통념을 깨버리는 남자와 여자 이야기, 역시 비슷한 질량이다.마음에 든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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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사람일수록 세상에 대해 불평과 불만만 쌓이는 법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키기보다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사람들에게 동정을 구하려 든다.
언제까지나 불평과 불만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인가?
어차피 인생은 험악한 세상에 내던져진 것이다.
현실에 불만을 쌓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겁을 먹고 걱정하며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짐승과 같은 삶이다.
현명한 인생은 자신이 이 어지러운 세상에 나온 것에 감사하고 이 세상을 행복한 세상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자세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행하는 것이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것이다.
다만 누가 더 가치 있고 행복하게 사는가 하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톨스토이
가끔씩 들리는 모 카페 대문에 걸려 있는 글이다.오늘 따라 유난히 마음에 와 닿아서 옮겨본다.이 원문을 찾아보려 했는데, 찾지 못했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현재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몇 번을 읽어봐도 새롭다.편안한 기분으로 카트에 "마음의 선물" 을 넣었다.뛰어난 고전을 만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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