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심히 보지 않았으면 그녀가 한번 결혼했다는 사실 조차도 지나칠뻔했다.그런면에서 영화는 관조적이다 못해 조금은 까탈스럽다.
"난 옆에서 나는 담배 연기가 이상하게 좋더라구" 나 역시 최근까지는 그랬었다. 특히나 어딘가에서 피우는 도라지 담배는 연하고 오래가서 좋아했었다.
어린 시절의 그 일을 알기 전까지 난, 어렴풋이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 걸 예상은 했지만, 어설프게 남자에게
"저.. 오늘 저녁, 저희 집에 오셔서.. 같이 식사하지 않을래요" "그냥.. 저.. 집에 고양이가 있는데, 한번 보여 드리고 싶어서요"
저 정도로 말도 못할 정도로 서투른가,그러다 그럴법하다 싶다.그 정도로 단단한 껍질이 한순간에 깨질 수는 없다,오롯이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야만 할 일이다.
나른할 정도의 한가한 진행이었다가 저 부분은 예고도 없이 불쑥 나온 느낌이었다,마치 뭔가 우연에 의해서 삶이 극적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이 부분에서 난 약간 멈칫했다.
장면이 바껴,소박한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그녀, 조그만 몸짓과 손짓.그리고 초대했던 그 사람은 오지 않고, 그다지 밝지 않는 실내에서 익숙하게 혼자 식사를 한다.라면과 김밥이 아닌, 손수 차린 식사로.그녀에겐 극히 이례적으로 용기를 내서 건넨 말이었겠지만,결과적으로 외면받았다.
우연히 고양이로 시작한 그녀의 시도가,조금씩 힘에 부치게 커져버린듯이 느낀 건가,다시 그 자리에서 선 그녀.
"미안해"
짧은 말,그리고 전에부터 그랬듯이 그녀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고통일지,일상일지 모를 그런 일들을 자신과는 다른 부분으로 밀어버린 듯한 인상이다.그녀의 생활방식이자 이제까지 살아오는데 익힌 요령일 것이다.
그러다 문득,무언가에 복받쳤는지 과거를 찾아가는 발걸음,그리고 그녀의 오열을 보면서 '여리고도 안쓰럽구나'
지극히 사실적이고 섬세한 작품이다.다른 영화처럼 시시콜콜한 섬세함이 아닌,다분히 관조적인 섬세함이다.어떤 의미에서는 중립적이라고 까지 보인다.
끝 부분의 머뭇거리는 그녀의 얼굴을 롱테이크로 잡아내는 그 장면이 퍽이나 기억에 남았다
"돈 갚아"
이 짧은 말처럼 많을 일들을 상상해주는 말도 드물 것이다.특히나 그 대화가 성인남녀가, 주변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로 말할 수 있다는 그 상황이라면 더 그렇다.
아주 짙은 스모키 화장,약간은 눈 마주치기 거북한 경직된 인상의 그녀.
보는 내내 자연광을 많이 썼다는 게 무척 마음에 든다,덕분에 이른 아침 그 공기마저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작위적인 느낌이 없어서 그런지 내겐 시작부터 좋은 느낌이다.이감독의 개성이라고 부를만하다.
멍한 눈으로 지하철 창밖을 바라보는 희수에게 병운은 뜬금없이 효도르 이야기를 건넨다.갑자기 흐르는 눈물.알수 있다, 살다 보면 그렇게 뜻 없이 눈물이 흐를 때도 있는 법이다.
그날 저녁,비탈길을 따라 운전하는 그녀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졌다.약간 피곤한 얼굴에 엷은 미소.나 역시 그 장면으로 만족한다.
이런 밋밋하고도 여백이 많은 작품이 한국영화계에서 흥행하긴 힘들 것 같다.실제로 신통치 않은 수입이었다.하지만,내겐 취향에 맞는 영화를 하나 더 발견해서 아주 만족했던 시간이었다.
Astrud Gilberto - The Girl from Ipanema
정혜의 엄마와 멎진하루의 한여사는 동일한 배우이다(김혜옥 분).거기에서 문득,
그리고 십년 후,서른여덟이 된 정혜,아들과 유치원에서 만들었다는 장식을 단,하나뿐인 앙징맞은 현관문 자물쇠를 열고 나선다.어느새 유치원가는것을 좋아라하는 승준의 작은손을 잡고 유치원버스를 기다린다.문자 메시지 하나, "누구야 엄마?" 하는 아들의 물음에 머뭇거리는 찰라, 유치원 버스가 도착한다.배꼽인사를 하고 난 아들이 어느새 또래 아이들과 떠들고 있다.
"한양대 부속 병원 장례식장,5월 5일 발인" 희수
정혜와 희수는 연년생 자매이다.엄마의 죽음 이라는 가족사가 아니면 연락도 하지 않는 사이다.그렇다고 사이가 나쁜것도 아니다.특별히 살가운 것도 없지만.
여전히 촌스러울 만치 소박한 색상과 치마길이, 그리고 낡아버린 신발의 정혜.도전적이고 도회적인 단발머리의 희수.
3일장이 치뤄지는 그 장소에 그녀들의 인연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이제 5살난 아들이 하나있는 정혜, 이모란 호칭에 기묘한 어색함으로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르는 희수.공통점이라곤 까만 상복을 입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뿐이다.
...
정혜와 희수,그녀들이 30대후반이 되었을때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과연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결혼과,아이가 생기면 삶이 치유 혹은 회복될까 아니, 인간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되살아날까.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레 알게된 건, 감독은 주인공의 혹은 개인의 관계를 주요하게 보여준다기보다는, 사람간의 관계에 더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이다.가끔씩 주요 인물들의 대사가 주변인의 대화나 소리들에 묻혀서 잘 안들리는데, 갑자기 감독의 시선이
이런거였구나, 라고 달리 보게 되었다.물론,다분히 내 자의적인 해석이다.
설 마 하던 기대가 무너진 다음에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용서 바랍니다.’ 이렇게 사과드리려고 했습니다만, 적당한 계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마음속 한편으로는 '형님이 하는 일을 일일이 감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변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500만불, 100만불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이미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명예도 도덕적 신뢰도 바닥이 나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말을 했습니다.
‘아내가 한 일이다, 나는 몰랐다’ 이 말은 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전들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국민들의 실망을 조금이라도 줄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미 정치를 떠난 몸이지만, 제 때문에 피해를 입게 될 사람들, 지금까지 저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계신 분들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습니다.
또 하나 제가 생각한 것은 피의자로서의 권리였습니다. 도덕적 파산은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피의자의 권리는 별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실’이라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앞질러 가는 검찰과 언론의 추측과 단정에 반박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상문 비서관이 ‘공금 횡령’으로 구속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이 마당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비웃음을 살 것입니다.
제 가 무슨 말을 더 할 면목도 없습니다. 그는 저의 오랜 친구입니다. 저는 그 인연보다 그의 자세와 역량을 더 신뢰했습니다. 그 친구가 저를 위해 한 일입니다. 제가 무슨 변명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를 더욱 초라하게 하고 사람들을 더욱 노엽게만 할 것입니다.
이제 제가 할 일은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는 일입니다.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나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저는 이제 이 마당에 이상 더 사건에 관한 글을 올리지 않을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에게도 동의를 구합니다. 이 마당에서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합시다. 제가 이미 인정한 사실 만으로도 저는 도덕적 명분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사람들은 공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정치적 입장이나 도덕적 명예가 아니라 피의자의 권리를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이것도 공감을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제가 말할 수 있는 공간은 오로지 사법절차 하나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여 러분은 이곳에서 저를 정치적 상징이나 구심점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사건 아니라도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방향전환을 모색했으나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해 고심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 동안에 이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상 더 이대로 갈 수는 없는 사정이 되었습니다.
이상 더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적어도 한 발 물러서서 새로운 관점으로 저를 평가해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저는 오늘 아침 이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이 사이트를 정리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관리자는 이 사이트는 개인 홈페이지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회원 여러분과 협의를 하자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